결혼한지 7년차 부부입니다.
아기는 없습니다.
요즘은 원해서 안 낳는 사람들도 많으니까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말고 받아들이자 해서
둘이서 여행도 다니고 나름 재밌게 살고 있었습니다.
근데 주변에서
지켜보는 가족들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닌데
우리가 괜찮다고 해도 자꾸 외로워서 어쩌냐 저쩌냐 말이 많은 차에
시어머니가 덜컥 조막만한 말티즈 강아지 한마리를 사오셔서는
키우는 재미가 있지 않겠냐며 주시는 거예요.
제가 강아지를 막 싫어하는 건 아닌데
저도 남편도 어릴 적이든 성인이 되어서든 강아지를 키워본 적이 없고
자식처럼 키우는 사람들 보면 뭔가 좀 어색하고
냄새라든가 털이라든가 좀 불편하게 생각해서 달갑지는 않았는데
선한 눈빛으로 우리 부부 생각해서 그러신다는데
뭔가 손주 못 안겨드린 죄인이라ㅋ
남편이 해결하게 그냥 뒀어요.
남편이 그 샵에 전화해서 파양하려고 했는데 단순변심으로는 파양이 안된다고 해서
지인들 통해서 새주인 찾기로 하고 그때까지만 저희집에 잠깐 있기로 했는데
근데 강아지가 너무 하얗고 쪼끄맣고 꼬물거리고 예쁘기는 했어요.
한 번 안아볼까 했는데 강아지 다리뼈가 치킨 닭다리보다
더 연약하게 만져져서 겁나서 만지지는 못하고
그냥 보면서 '예쁘다' 생각했어요.
강아지도 아직 애기라 그런지 애교를 부리거나 재주를 부리거나 그러지는 않고
거의 잠자고 혼자 인형물고 놀고 그러더라구요.
어쩌다 배변 패드에 소변이나 응아를 보면 그냥 아유 이뻐~ 정도 말해주고
다른 건 별거 안하고 소변 치우고 응아 치우고 물 주고 사료 불려주고 그정도..
낮에는 저도 거실에 나와있고 그러면 저만 졸졸 따라다니다가 특별히 짖거나 그러진 않은데
밤에 잘 때는 남편이랑 저는 안방에서 문 닫아 놓고 자고
강아지는 거실에 두니까 새벽에 계속 낑낑거리고 울더라구요
그래서 그럴 때마다 남편이 안돼!! 하면서 혼을 냈더니
그 뒤로는 좀 조용해서 그러려니 했습니다.
그러다가 일주일 쯤 지나고
새벽에 화장실을 가려고 거실에 나왔는데
강아지가 귀를 뒤로 바짝 붙이고 꼬리를 흔들면서
저한테 안기더라구요
그.. 뭐라고 설명할 수가 없는데 갑자기 막 마음이 뭉클하면서..
그길로 안고 들어가서 안방에서 같이 자고 그 후로 완전 내 새끼 이쁘다 하면서
남편이랑 같이 함께 잘 살아보자 됐는데..
애견 초보라서 찾아보니까 예방접종도 종류별로 해야되고 할 일이 많더라구요.
사료도 샵에서 준 사료는 등급이 낮은 사료여서 등급 높은 사료 찾게 되고
모를 땐 몰랐는데 알고보니 샵에서는 분양 받으면 안되는 거고..
기타등등 정말 뭐가 많고 복잡하고 어려웠지만
신기하게 빠져들더라구요
오히려 좀 집착하게 된 것도 같고
애기가 딸꾹질만 해도 놀라고 잠을 많이 자도 물을 적게 먹어도 다 신경이 쓰이더라구요.
그러던 차에 접종이 끝나고 이제 산책을 나가도 된다고 해서 산책을 나갔는데
얼마전만 해도 강아지 데리고 다니는 사람들 별로 달가워 하지 않던 저희 부부였기 때문에
당연히 배변봉투 물티슈 비닐봉지 한가방 챙기고 가슴줄 리드줄 다 착용하고
좀 떨리는 마음으로 다녔어요.
사람들도 신경쓰이고, 저희 강아지 자체가 너무 조막만 해가지고
다른 개한테 물리진 않을까 머 잘못 해서 다리 부러질라 그런 마음으로요.
근데 저번 주말에 공원에서
맞은 편에서 네살 정도 되보이는 아이가 엄마아빠랑 걸어와서
멀리서부터 그 가족이 보이긴 했는데 강아지를 안을까 어쩔까 하다가
저희는 잔디밭 쪽에 있고 그 가족은 돌길로 걸어서 줄만 짧게 잡고 그냥 뒀는데
그 가족이랑 저희가 가까워지니 아이 엄마가
아이가 강아지랑 인사해도 되냐고 묻더라구요.
엄청 친절하게 물어서 저도 웃으면서 네 그럼요라고 했는데
제가 상상한 건 아이가 강아지한테 아이 예쁘다 하면서 쓰다듬는? 그런 거였는데
아이가 저희 강아지 앞에 쭈그리고 앉아서 저희 강아지 허벅지 쪽 털을 잡는가 싶더니
그대로 벌떡 일어서는 거예요.
강아지는 순식간에 머리가 땅쪽으로 허벅지 털만 잡힌 채 공중에 매달려서는
완전 깨갱깨갱 소리를 지르고 제가 깜짝 놀라서 한손으로 저희 강아지를 잡고
한손으론 아이 손을 잡고 "이거 놔!! 놔 놔!!" 하는데
그쪽 엄마도 아이를 안아올리는데 아이가 털을 꽉 잡고 안 놓으니까
저희 강아지는 또 죽는다고 소리를 지르고 그러다 저희 강아지가 땅에 떨어질 뻔 한 걸
겨우 잡아서 보는데 솔직히 그쪽 아이 챙길 정신 없고 저는 저희 강아지 살펴보고
괜찮은지 땅에 내려놓고 다리에 문제 없는지 보는데
저쪽 엄마가 저보고 소리를 확 지르는 거예요.
아이가 개한테 물렸으면 어쩌려고 개만 보고 있느냐구요.
정말 벙져서 첨에는 물렸다는 소리인 줄 알고 "물렸다구요?" 라고 했더니
물렸으면 어쩔 뻔 했냐고 아이는 안 보고 개만 보냐고 하는 거예요.
그리고 제가 자기 아이 손을 꽉 잡아서 아이가 다칠 뻔 했다고요.
저는 상황파악이 잘 안되더라구요. 왜냐면 아이는 그때에도 손에
저희 강아지 빠진 털을 한웅큼 쥐고 방실방실 잘만 웃고 있는데 무슨..
완전 벙진표정으로 있으니까 그쪽 아이 아빠가 전화번호를 달래요.
나중에 아이 손에 멍 올라오거나 문제 생기면 연락한다고
저희 남편이 번호 교환하고 돌아서면서
우리 강아지도 다리 탈구라든가 문제 생기면 연락 하겠다고 했더니
그때부터 분위기가 엄청 험악해져서 남편들끼리 언성이 높아졌어요.
자기 아이는 예뻐서 그런건데 강아지가 소리를 질렀고
제가 아이 손을 잡아서 아이가 놀랬다
그리고 아이가 물릴 뻔 했는데도 주인이란 작자가 강아지만 챙긴다.
아무리 세상에 강아지에 미쳐도 이렇게 안하무인이냐. 는 식으로 아이 아빠가
계속 소리를 지르니까 주변 사람들도 좀 모여들고 그랬어요.
저희 강아지 진짜 아직 1kg도 안나가는 애기강아지지만 이빨은 있기 때문에
누군가가 물릴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이번 일은 아이한테도 부모가 "강아지 그렇게 하면 아파해" 라든가
"강아지 그렇게 들면 안돼" 라든가 그런 교육도 필요한 거 아닌가요?
예쁘면 막 해도 되나요? 말 그대로 아이는 어리니까 그럴 수 있어도
그럴 때 부모가 알려줘야하는 거 아닌가요. 그리고 정말 정말 물리지도 않았어요.
저도 가슴이 너무 진정이 안되서 끝까지
진짜 물렸으면 나중에라도 그쪽 말대로 멍이 올라오거나
문제가 생기면 우리가 치료비든 머든 해주겠다 근데 진짜 우리 강아지도
문제 생기면 연락 하겠다고 했더니
사람이랑 개가 같냐는 거예요. 어디서 개를 사람한테 비하냐구요.
말문이 막히더라구요.
비할 수 있나요? 없죠. 사람 아기가 더 중요하죠.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근데 저희 강아지도 정말 소중하거든요.
집에 와서 그쪽에서도 연락 안 오고
저희 강아지도 괜찮은지 잘 놀아서 안심은 되는데
털이 정말 왕창 빠지고 그 쪽 피부가 진분홍색으로 달아올라 있습니다.
강아지 키우기 힘드네요.
키우는 사람과 안 키우는 사람이 이 정도로 온도차가 있는 줄 몰랐어요.
그 후로 산책 안나가고 있는데
강아지는 꼭 매일 산책 나가야 하는 동물이라고 해서 마음이 답답합니다.
다들 강아지 어떻게 키우시는지..
다들 아이는 어떻게 키우시는지...
제가 강아지 한마리도 이렇게 제대로 못키우는데
아이는 키울 수 있을지 우울해지네요.
어쩌다 답답한 마음 하소연 하려다 보니 구질구질 길게도 적었네요..
---------- 방탈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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